출근길에 “오늘 환자 없으니 출근하지 말라”…응급OFF 심각

김민준 / 기사승인 : 2021-06-21 14: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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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규칙한 3교대근무제에 갑작스런 근무표 변경…교대근무자 보호조치 무색 병원의 환자감소를 이유로 한 응급OFF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환자수에 비해 인원이 많다는 이유로 당일이나 하루 전날 연락하여 근무인원을 조정하는 경우도 있었고, 환자 중증도가 낮다는 이유로 응급OFF를 부여하는 경우도 있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지난 3월 22일부터 5월 7일까지 국립대병원, 사립대병원, 지방의료원, 민간중소병원, 보훈병원, 근로복지공단병원 등 보건의료노조 소속 93개 지부(102개 의료기관)를 대상으로 의료현장의 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21일 발표했다.

병원은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담당하는 업무의 특성상 24시간 근무가 불가피히다.

병원 노사는 단체협약에 교대근무자 보호 조항을 마련해두고 있다. 대표적인 교대근무자 보호 조항은 월 야간근무 개수 제한, 연속근무일수 제한, 근무와 근무 사이 휴게시간 보장, 야간근무 후 최소 휴식시간 보장, 파행근무표 편성 금지, 확정된 근무표(번표) 변경 금지, 밤근무에 따른 수면휴가 보장 등이다.

그러나 이 같은 교대근무자 보호조치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달랐다.

교대근무자 보호조치가 제대로 보장돼 있지 않거나, 이행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근무표(번표)가 확정됐지만 갑자기 변경되는 사례가 많았다. 주로 ▲병가, 조사, 청원휴가, 예정되지 않은 갑작스런 사직, 사고, 코로나19와 같은 감염자나 자가격리자 발생, 임신사실 확인, 분만, 부서이동, 인사발령 ▲의사의 스케줄 변화 ▲갑작스런 이식환자 발생 등이 그 이유에 해당됐다.

반면, 이런 경우 외에 환자나 각종 검사건수가 감소되었다는 이유로, 또는 입원환자가 입원을 취소했다는 이유로 당일 근무표를 갑자기 변경하여 휴가(응급OFF)를 강제로 부여하는 사례도 있었다.

충청의 A사립대병원은“병동이나 중환자실 환자수가 적으면 응급OFF를 부여해 쉬게 하고, 나중에 개인 연차휴가로 처리한다.”고 응답했다. 이 경우 원하지 않는 연차휴가를 강제로 사용하게 되는 셈이다.

이밖에도 연차휴가 소진을 촉진하기 위해 근무표를 갑자기 변경하는 사례도 있었고, 고연차·중간 연차·저연차의 연차 분포를 위해 근무표를 변경하는 사례도 있었다.

응급OFF의 경우 황당한 사례가 많았다. 아무 예고도 없다가 출근길에 갑자기 “환자가 줄었으니 오늘 나오지 마라.”“오늘 환자 없으니 출근하지 말라.”는 전화를 받고 집으로 다시 향하는 경우가 대표적이었다.

충청남도 B지방의료원처럼 경영악화를 이유로 근무자수를 줄이면서 응급OFF를 부여하는 경우도 있었고 강원도 C지방의료원처럼 명절연휴에 입원환자가 줄거나 진료의사가 2일 이상 휴가를 가면 응급OFF를 부여하고 연차휴가를 소진하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영남권 D국립대병원의 경우 병상가동률이 50% 이하일 때 응급OFF를 부여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노사 교섭을 통해 응급OFF를 금지하고 있는 곳도 있고, “병동환자의 단기간 감소를 이유로 다음날 병동 근무표상 인력을 변경하지 않는다.”고 합의한 곳도 있지만 실제로 의료현장에서는 환자수 증감을 이유로 본인이 원하지 않는 시기에 강제로 연차휴가를 소비시켰다.

응답자들은 환자 감소를 이유로 갑자기 근무표를 변경하여 휴가를 강제하는 관행이 근절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나타냈다. 또한, “간호인력 부족을 이유로 근무조당 일하는 간호사를 줄여 근무표를 짜고 반강제적으로 휴가사용을 강제하는 바람에 업무는 과중되고 보상은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사례가 더 이상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

연차휴가 사용을 수간호사가 임의로 강제하거나, 장기근속자 위주로 근무표를 작성하다 보니 신규간호사나 저연차 간호사들에게 근무 신청의 기회가 부여되지 않는 데 대한 불만도 높았다.

불규칙한 근무에 시달리고 있는 병원의 교대근무자들은 잦은 근무표 변경에 대해 “근무표 작성을 부서장이 권력처럼 휘두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거나 “상급자가 스케줄 변경을 임의로 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감시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또한 “계획된 삶을 살고 싶다.”“제대로 쉬는 느낌을 받으며 살고 싶다.”“결원 발생 시 대체할 수 있는 여유 인력이 필요하다.”“최소한 환자수 감소로 인한 반강제적 OFF(휴가) 강요는 없어야 한다.”“안정적인 업무환경, 안정적인 인력운영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교대노동자 보호조치로 시행되고 있는 수면휴가(sleeping off)제도도 허점투성이였다. 교대근무자의 수면권을 보장하기 위해 많은 병원들이 수면휴가제도를 시행하고 있었다. 병원들은 월 밤근무 개수가 일정 횟수(예 : 5회, 6회, 7회, 8회 등)에 도달하면 1일의 수면휴가를 부여하고 있었다. 월 단위로 계산하는 곳도 있었지만, 월과 관계없이 밤근무 개수가 누적되어 일정 횟수에 도달하면 1일의 수면휴가를 부여하는 곳도 있었다.

그러나 이 같은 수면휴가제도 또한 시행과정에서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었다. 보건의료노조의 의료현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누적이 아니라 월 야간근무 7개를 초과하는 경우에만 수면휴가를 부여하고 있어 실제 적용사례가 많지 않아 수면권 보장 의미가 없다.”는 응답도 있었고,“수면휴가를 부여하지 않으려고 근무표에 개인당 야간근무를 월 7개씩만 작성한다.”“수면휴가를 주지 않기 위해 야간근무수를 조절한다.”는 사례도 있었다.

수면휴가제도를 악용하는 사례도 있었다. 인천의 E사립대병원에서는“야간근무를 줄이려는 노력 대신 수면휴가를 발생시키면서 인력이 부족한 부서에 인력을 충원하지 않고 있다.”는 응답이 나왔다. 응답자는 “병원측이 인력을 증원하는 것보다 수면휴가를 1개 더 주는 것이 이익이라고 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최악의 교대근무제’로 인해 가장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하고 있다. 그나마 노사합의로 마련한 야간교대근자 보호조치들은 환자증감과 인력부족을 이유로 무용지물이 되고 있고, 교대근무자들은 갑작스런 근무표 변경과 원치 않는 강제휴가에 내몰리고 있다. 이런 열악한 야간교대근무제는 간호사들이 정규직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높은 이직률을 보이고 있는 원인이 되고 있다. 신규간호사의 45.5%가 1년 안에 이직하는 핵심이유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9월 산별총파업을 예고하고 있는 보건의료노조는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병원의 교대근무제를 근본적으로 개편하기 위해 “2021년을 최악의 병원 교대근무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원년으로 만들겠다”는 방침 아래 ▲규칙적이고 지속가능한 병원 야간교대근무제 모델 마련 ▲병원노동자들이 수용가능하고 만족할 수 있는 야간교대근무제 시범사업 시행 ▲주4일제 노동시간 단축 ▲확정된 번표 변경 금지 ▲강제적인 휴가 부여 금지 및 본인이 원하는 시기에 휴일·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충분한 인력 확충 등을 요구하고 있다.

 

메디컬투데이 김민준 (kmj6339@md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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