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 과실 규명보다 피해 회복에 집중해야”…무과실 의료배상제도 도입 필요성 제기

김미경 기자 / 기사승인 : 2026-05-08 08: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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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일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은 의협회관 4층 대회의실에서 ‘무과실 의료배상제도의 필요성과 함의’를 주제로 제12차 의료정책포럼을 개최했다. (사진=김미경 기자)

 

[mdtoday = 김미경 기자] 의료사고 피해에 대해 의료인의 과실 여부와 별개로 무과실 의료배상제도가 도입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7일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은 의협회관 4층 대회의실에서 ‘무과실 의료배상제도의 필요성과 함의’를 주제로 제12차 의료정책포럼을 개최했다.

이번 포럼은 무과실 의료배상제도의 필요성과 제도 도입 시 고려해야 할 주요 쟁점을 검토하고, 향후 정책적 방향과 과제를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안덕선 의료정책연구원장은 “무과실 의료사고에 대한 보상체계는 환자 보호와 의료현장의 안정성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중요한 정책 과제”라며 “이번 포럼이 제도 도입에 대한 균형 잡힌 논의와 실효성 있는 정책 대안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날 첫 번째 발제를 맡은 법무법인 바른 김경수 변호사는 ‘무과실 의료배상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주제로 발표하며 현행 의료분쟁 해결 구조가 환자와 의료인 모두에게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현재 과실책임 중심의 의료분쟁 구조에서는 환자가 의료인의 과실과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하고, 의료진 역시 민·형사상 사법 리스크에 노출된다”며 “누가 잘못했는가를 따지는 데 머물 것이 아니라 피해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의료분쟁 조정 신청은 1만672건에 달했고, 조정 불성립 및 각하율은 32.8%로 집계됐다. 조정이 성립된 경우 평균 보상금은 1005만원 수준이었다.

또한 의료분쟁 민사 1심 평균 처리기간은 24.6개월로 일반 민사 사건 평균 처리기간인 7.4개월보다 3배 이상 길었다.

김 변호사는 “실제 의료사건은 3~5년 이상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환자 입장에서는 전문지식이 없는 상황에서 과실과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하는 게 쉽지 않고, 변호사 비용과 감정 비용도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그는 무과실 의료배상제도가 도입될 경우 환자 측면에서는 ▲과실 입증 부담 완화 ▲보상 절차 단축 ▲환자 비용 부담 감소 ▲예측 가능한 보상 기준 마련 등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의료진 측면에서는 ▲방어진료 감소 ▲필수의료 회복 ▲형사 리스크 분산 ▲환자-의사 신뢰 회복 등을 기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해외 사례도 소개됐다. 김 변호사는 스웨덴과 뉴질랜드는 비교적 포괄적인 무과실 보상 체계를 운영하고 있고, 일본과 대만은 산과 영역 중심의 제한적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프랑스는 무과실 사고에 대한 보상과 중대한 과실에 대한 책임 추궁을 분리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한국은 일본·대만처럼 분만 영역에서 출발해 고위험 필수의료 분야를 거쳐 전 진료과로 확대하는 단계적 방식이 현실적”이라고 제안했다.

그는 한국형 무과실 의료배상제도 설계 방향으로 ▲고위험 필수의료 중심 단계 확대 ▲환자 사망·중증장애 등 중대한 결과 요건 ▲의학적 인과관계 심사 ▲회피불가능 사고 여부 판단 등을 제시했다.

또한 의료분쟁조정중재원 감정부와 보상심의위원회가 참여하는 2단계 심사 구조를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원 마련 방식과 관련해서는 국가 일반회계와 건강보험, 의료기관 책임보험료, 국민 또는 피보험자 부담 등을 결합한 다층적 재원 구조를 제안했다.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김기영 경희대학교 공공대학원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무과실 의료사고 보상제도와 비교법적 현황’을 주제로 발표를 진행했다.

김기영 교수는 의료사고의 특성상 환자가 의료 과실과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직접 입증하기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과정에서 정당한 보상을 받아야 하는 환자들이 충분한 피해 구제를 받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무과실 보상체계가 도입되면 환자의 입증 부담을 줄이면서 보다 신속한 피해 구제가 가능해지고, 의료 안전 개선과 위험 분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뉴질랜드의 ACC 모델과 프랑스의 ONIAM 제도를 사례로 소개하며 긍정적인 효과를 설명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뉴질랜드의 ACC 제도는 의료사고를 포함한 모든 사고를 포괄적으로 보상하는 세계 최초의 모델로, 불법 행위 소송을 폐지하는 대신 보편적 보상 체계를 운영한다.

프랑스의 ONIAM 제도는 과실이 없는 경우에도 국가가 중증 의료사고에 대해 보상한다. 과실 여부보다 피해 회복과 중증도를 중심으로 보상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우리나라의 현행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제도는 분만 사고 중심으로 운영돼 적용 범위가 제한적”이라며 “무과실 보상의 공백이 지속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무과실 보상제도 도입에 대해 ▲과실책임주의와의 정합성 ▲재원 조달 방식 ▲도덕적 해이 ▲보상 범위 획정 등을 주요 쟁점으로 내놨다.

그는 “한국은 과실책임 체계를 유지하면서 무과실 보완기금을 병행하는 이원적 구조가 현실적”이라며 “중증도 기준 도입과 독립 보상기금 설치, 행정적 보상 절차 확립, 의료 안전 시스템과의 연계라는 4가지 핵심 원칙에 기반한 단계적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메디컬투데이 김미경 기자(sallykim0113@md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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